한때 재건축·재개발 대안으로 떠오르던 리모델링 시장에도 한파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리모델링 사업을 철회하거나 재건축으로 선회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는데요. 추진동력을 잃어버린 리모델링 시장에서 서둘러 발을 빼고 있는 단지들을 살펴봤습니다.
서울 등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 줄줄이 난항
서울 및 수도권 곳곳에서 리모델링 조합들이 해산하는 사태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한때 집값을 밀어 올리던 리모델링 단지들이 이제는 시공사를 찾지 못해 유찰을 거듭하다 결국 해산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인데요.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풍납동 강변현대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은 최근 조합 해산 절차에 돌입했습니다. 지난해 5월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에 나선지 1년 6개월여 만입니다.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입찰에 참여한 건설사가 한 곳도 없어 조합은 결국 사업을 접기로 했습니다.
서울이 아니어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시공사 선정에 어려움을 겪던 경기 군포시 설악주공8단지는 지난해 7월 쌍용건설·SK에코플랜트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쌍용건설이 돌연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포기하면서 5개월여간 진행된 시공사 입찰이 결국 무산됐습니다.
이들처럼 시공사를 찾지 못해 표류하다 결국 리모델링을 취소하고 재건축으로 사업을 선회하는 곳들도 늘었습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리모델링을 추진했던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홍제한양아파트 조합은 지난 9월 리모델링 추진위 해산 절차를 끝내고 재건축 추진위를 결성했고, 구로구 신도림현대아파트도 리모델링 조합을 해산하고 정비사업 방식을 재건축으로 변경해 추진위를 꾸리고 있습니다. 성동구 응봉대림1차아파트도 리모델링에서 재건축으로 노선을 바꿨는데요. 이에 지난 10월 재건축 기준에 부합하는 안전진단 D등급을 받은 상태입니다.
강남권 최초 수직증축 리모델링 단지로 인정받은 서초구 잠원동 잠원한신로얄의 경우 강화된 리모델링 규제로 발목이 잡힌 곳입니다. 최근 수직증축을 위한 2차 안전성 검토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으면서 리모델링이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안전성 검토를 다시 신청할지 조합을 청산할지 기로에 놓인 상황입니다.
이밖에 안양 평촌, 고양 일산 등 1기 신도시에서도 리모델링을 포기하거나 철회하는 단지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례로 경기 안양 평촌신도시에서는 은하수마을 청구, 샘마을대우, 한양 등이 리모델링 철회를 결정했고, 고양 일산신도시는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에서 사업 철회냐 진행이냐를 두고 주민들 간 의견이 엇갈리는 부침을 겪고 있습니다.
정비사업에서 설 자리 없는 리모델링…'계륵' 조차 안되나
사업 속도가 재건축보다 빠르다는 장점 등으로 인기를 끌던 리모델링 사업이 여러 이유로 주춤하고 있습니다.
우선 경기 둔화에 고금리 장기화, 자잿값 등 공사비 인상에 따른 분담금 상승으로 사업 진행이 더뎌지면서 리모델링 매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게 현장의 전언입니다.
“리모델링은 소규모 단지가 많고,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외면 받다가 재건축 규제로 반사이익을 누리기도 했는데요. 지금은 상황이 바뀐 거 같아요. 지속되는 시장 침체와 공사비 상승 등으로 사업 자체가 지지부진하죠. 실제로 시공사와 리모델링 조합 간 갈등과 대립이 심한 곳도 있어서 리모델링이 다시 활성화되긴 어려울 거 같아요”(서울 송파구 풍납동에 위치한 Y공인중개업소)
여기에 서울시의 ‘2030 서울시 공동주택 리모델링 기본계획’에 따라 리모델링 관련 규제를 강화한 점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규제 강화로 1차 안전진단만으로 추진이 가능하던 수평증축이 앞으로 수직증축처럼 2차 안전진단을 받아야 하는 만큼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 리모델링 사업장들은 사업 방식을 변경하거나 추가 안전성 검토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서울시 등에 따르면 2020년 개정된 주택법으로 인해 현재 서울 도심 내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 총 76곳 가운데 23곳이 연내 의무적으로 총회를 열고 조합 해산 여부 등을 결정해야 하는데요.
리모델링 업계는 용적률이 200%를 초과하는 즉, 재건축이 어려운 노후 단지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규제는 강화되는 분위기여서 리모델링 시장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재건축은 규제 완화로 사업성이 더 좋아져 갈아타는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고 있습니다. 도시정비사업에서 리모델링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부동산전문가 K씨는 “과거에는 리모델링이 다른 정비사업보다 속도도 빠르고 규제에서도 자유로웠지만, 이제 규제가 까다로워지면서 사업이 지지부진한 곳이 늘고 있다. 리모델링의 성장 동력이 모두 떨어진 상황이라 볼 수 있는 만큼 사업을 접고 재건축으로 방향을 트는 리모델링 단지가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