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안 없어진 충정아파트
2호선 충정로역 근처에 90살 아파트가 있습니다. 매번 역사속으로 사라진다고 난리였는데 아직도 건재한 초록색 ‘충정아파트’입니다.
이게 1979년에 정비사업구역으로 지정됐으니까, 이미 박정희 시절에도 노후 건물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2025년 현재까지도 철거되지 않고 있죠. 진짜로 일제시대에 태어난 이 아파트는 어째서 지금까지 재건축이 안된 걸까요? 그 배경에는 한 사기꾼이 있습니다.
재건축의 기본 원리
충정아파트 사연을 얘기하기 전에 재건축에 대해 잠깐 짚고 가도록 하죠. 재건축은 땅으로 하는 게임입니다. 건물은 어차피 부술거라 중요하지 않습니다. 공동주택의 구분소유자들은 그 단지의 땅에 대한 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이 땅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켜서 헌 아파트를 부수고, 새로 짓게 됩니다.
이렇게 빌린 돈은 새로운 이웃이 갚아줍니다. 새로 지은 아파트는 기존보다 세대수가 많은데, 기존 소유자들이 가져가고 남은 아파트를 새로운 이웃들에게 팔아서 비용을 충당하는 겁니다. 새 이웃들은 기존 소유자들이 보유한 땅 지분을 나누어 받으면서 새로운 구분 소유자로 편입되게 됩니다. 이게 재건축의 기본적인 원리입니다.
이 모든 거래의 근간엔 땅이 있습니다. 대지지분이 없다면, 재건축이라는 게임에 참가할 자격이 없는겁니다. 충정아파트는 5층에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아파트, 충정아파트의 독특한 구조
충정아파트는 국내 최초 아파트로 꼽힙니다. 더 일찍 지어진 곳도 있긴 한데, 각 가정이 구분소유하는 공동주택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아파트의 효시로 봅니다. 1930년대에 일본인 도요타씨가 지었는데요. 지금은 보기 힘든 독특한 구조가 남아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내부 중정이죠. 일본식 건물에 유행하던 방식입니다.
중앙에 있는 거대한 벽돌 굴뚝은 건물 전체에 온수를 공급하는 중앙난방 시스템의 흔적입니다. 공용 화장실이 일반적이던 시절에 각 세대 안에 수도와 화장실을 깔았죠. 현대 아파트의 원형으로 꼽히는 이유입니다.
‘반공의 아버지’ 김병조 사기극의 치명적인 여파
이 건물은 호텔로 용도를 변경한 뒤 미군정에서 숙소로 썼고 한국전쟁때도 잠시 인민군이 점거하는 등 역사의 굴곡에서 용케도 살아남았죠.
이렇게 질기게 살아남은 이 건물은 한 남자에게 무상으로 넘겨집니다. 제주도에서 온 김병조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6·25 전쟁 당시에 여섯 아들을 모두 나라에 바쳤다고 알려졌습니다. 이 사연이 전국적으로 관심을 받아 ‘반공의 아버지’라고 불렸죠.
이 사연으로 이승만 정권때는 훈장을 받았고 미군정도 눈물을 닦으며 이 사람 주라고 건물을 싹 개보수해서 박정희 정권에 넘겨줬습니다. 박정희 정권도 관리권을 통째로 김병조씨한테 줬죠. 당시 가격으로 5억환(5천만 원)정도였다는데 요즘 돈으로는 약 20억 정도 합니다.
당시에 이 양반이 이 건물을 증축하고 개조해서 ‘코리아관광호텔’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했는데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김병조씨한테 애초에 아들이 없었다는 사실이 투서로 드러났죠. 서슬퍼런 군사독재 시절에 나랏님을 속여먹은 이 양반은 당연히 잡혀갔고, 건물은 사세청(국세청)이 몰수했습니다.
이후로 공매를 거쳐서 호텔로 이용되다가 저당권자 서울신탁은행이 소유권을 가져갔고, ‘유림아파트’라는 이름으로 일반분양됩니다. 문제는 이 김병조가 소유한 시절에서 시작됩니다. 이 사람이 호텔로 고치면서 5층을 불법증축했거든요.
대지지분이 없는 5층 구분소유자는 재건축에 참여할 자격이 없는겁니다.
충정로 확장으로 불거진 대지지분 문제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건 1979년입니다. 건물 앞 충정로를 8차로로 늘리는 공사가 있었는데 이때 충정아파트가 도로에 딱 걸리게 된 겁니다. 보통은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잃은 땅에 대해 보상을 받고 새 건물을 짓는게 일반적인데요.
그런데 충정아파트는? 5층에 대지지분이 없죠. 무슨 판자촌처럼 아무렇게나 점거한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분양을 받아서 들어왔는데 하루아침에 쫒겨나게 생긴 5층 사람들이 이걸 용납할 수 있을리가 없었던 겁니다.
이때 결국 궁여지책으로 선택된 게 건물 전면부 일부를 철거하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지금 충정아파트 전면이 식칼로 자른 케이크 단면 꼴이 된 겁니다.
이 때 집 일부를 뺏긴 주민들이 공용공간으로 진출을 하기 시작합니다. 복도, 계단실, 중정을 깔고 앉았죠. 덕분에 중정 면적이 2/3로 줄었다고 합니다. 진작에 재건축을 끝냈어야 할 건물이 너무 오래 살아남아버리면 생활환경이 이렇게 악화되고 마는겁니다.
100년 만에 열린 재건축 물꼬… 쉽지는 않아
충정아파트는 거의 100년이 다 돼서야 정비사업에 물꼬가 트인 상황입니다. 문화유산으로 삼는다는 서울시 방침 때문에 뜬금없이 발목을 잡히기도 했었는데, 2022년에 다행히 철거로 가닥이 잡혔죠.
2024년에는 일대와 묶어서 드디어 재개발 조합 설립까지 마쳤습니다. 2008년 추진위 구성 이래 16년만입니다. 조합을 설립한 걸 보면 어느 정도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아직 공개된 건 없어보입니다.
5층 지분이 어떻게 정리됐는지 문의하려고 조합에 문의를 해 봤는데요. 사업 자체의 미디어 노출이 탐탁찮다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외부 환경도 쉽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시공사 선정이 몇 차례 유찰을 거치면서 사업이 늘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죠. 아무래도 사업 규모도 조금 작은 편이고 건설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시공사 찾기가 쉽지는 않은 환경이긴 합니다.
그래도 충정아파트 재건축은 안할 수가 없는 지경에 내몰려 있습니다. 지난해 서대문구 안전진단검사에서 즉시 철거 대상인 E등급을 받았죠. 도저히 이대로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니, 서대문구에서도 연내에 임대주택이나 임시 거처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그만큼 행정적 지원이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충정아파트가 남긴 세 가지 교훈
충정아파트에서 얻을 교훈은 3가지 정도 됩니다.
첫째, 재건축은 기회가 왔을 때 해야합니다. 충정아파트는 1979년 합의에 실패하고 나서 40년 이상 정비사업이 표류했습니다. 1979년은 은마아파트가 준공한 연도죠. 합의 실패로 재건축 버스를 한 번 떠나보낸 결과 새로 지은 아파트가 낙후돼서 재건축이 절실해 질 정도의 기간을 낙후된 채로 보내야 했던 겁니다.
둘째, 정비사업은 땅이 핵심입니다. 정비사업이 꼬여서 수십년 남아버리는 사업은 기본적으로 땅에 문제가 있는 편입니다. 서소문아파트는 복개천 위에 서 있고 이촌동 중산시범은 시유지 위에 서 있죠 재개발 초기 단골 암초인 종교시설도 결국 따져보면 다 땅 문제고, 지주택도 땅도 없이 사람부터 모으니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부동산을 살 때 건물이 아니라 땅을 봐야되는 이유입니다.
셋째, 둘째와 같은 맥락에서 토지임대부 아파트 같은 건 신중하게 접근하세요. 토지임대부 아파트의 미래 가운데 그나마 가장 잘 풀린 케이스가 중산시범입니다. 조합에서 시유지를 매입해서 재건축을 하는거죠. 물론 땅 매입비용 만큼 분담금이 늘어납니다.
지상권을 근거로 재건축도 가능하긴 합니다만 앞에 말씀드렸듯 재건축은 땅으로 하는 게임이죠. 새 아파트를 쌩돈을 들여서 지어야 하는데 일반분양분을 고려하더라도 상당한 분담금을 각오해야 할 겁니다.
땅을 담보로 잡을 수 없으니 PF대출을 일으키기도 쉽지 않을테고요. 사업이 추진력을 얻기가 쉽지 않은겁니다. 여러모로 불리한 면이 많은 편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이 쯤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다음에는 더 재밌는 얘기로 돌아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