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베네치아가 많습니다. 원산지인 이탈리아에도 한 곳 밖에 없는데 유독 한국에 많죠. 부산에도 있고, 포항이나 인천, 김포에도 있습니다. 비슷한 반도라서 더 끌리는 모양이죠.
아시다시피 그 결과는 기대 이하입니다. 오리지널 베네치아는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다가“단체관광객은 25명까지” 규칙까지 만들었다는데, 한국의 베네치아들은 파리도 25마리 모여있는 걸 보기 힘들죠.
똑같이 물도 있고, 예쁜 건물도 있는데 이런 차이는 왜 나는걸까요? 한국의 베네치아 중에서도 대표주자로 꼽히는 김포에 다녀왔습니다.
대규모 ‘공실 스트리트’ 된 한국의 베네치아
김포 라베니체는 ‘한국의 베네치아’라는 슬로건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곳입니다. 한강신도시 장기동에 위치한 수변공간으로 예쁜 야경으로 SNS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다만 한낮의 라베니체는 분위기가 대조적입니다. 금빛수로 양쪽을 따라 건설된 상가는 곳곳이 비어있습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보면 더 많은 공실을 볼 수 있죠. 총 9차에 걸쳐 공급된 상가들이 모두 비슷한 상황입니다.
4차 상가의 이 호실은 1년 반만에 6억 원이 날아갔습니다. 2016년 처음으로 분양받은 60대 여성은 약 8억 5천만 원을 대출받아 이 상가를 분양받았습니다만 결국 2024년에 경매로 넘어갔습니다.
당시 최초 감정가는 10억 3천만 원이었는데 세 차례 유찰을 거쳐 3억 5천만 원 까지 최저 입찰가격이 내려왔죠. 다른 상가에도 비슷한 사연은 흔하고, 여러 상가들의 경매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임대료는 더 낮추기도 힘듭니다. 이미 평당 10만원 수준인 장기역 상권보다 낮은 수준으로 형성되어 있는데다, 초기 분양가가 높았던 탓에 이자 부담이 상당한 상황입니다.
가령 4차 전용 44㎡ 상가는 현재 월세 110만 원에 매물이 나와 있습니다. 이 상가는 분양가가 평당 2,200만 원이었습니다. 분양가 80%를 연 5%로 대출받았다면 이자만 188만 원씩 내고 있겠죠.
결국 견디지 못한 순서대로 경매에 나오게 됩니다. 2022년에 같은 상가 비슷한 타입이 2억 5천만 원에 낙찰된 걸 고려하면 이자를 빼고도 최소 3억 넘게 손해를 본 겁니다.
활성화 발버둥치는 김포시와 상인들, 하지만...
라베니체는 딱히 방치된 상권도 아닙니다. 김포시의 라베니체 살리기는 눈물겨운 수준이죠. 지적받던 공영주차장을 서둘러 조성하고 성수기 10월에는 불꽃놀이 축제도 개최해 소기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특히 대단한 노력이 팔당원수 공급입니다. 원래 금빛수로는 농업용수만 흐르는 곳이었는데 물이 부족하다보니 악취가 난다는 민원이 있었죠. 여기에 80억을 들여서 팔당원수 공급 시설을 구축했고 덕분에 지금은 투명한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포시와 상인들의 노력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공실 현황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직접 가 본 라베니체에서는 그 아쉬움이 직접적으로 확인됩니다.
라베니체에 방문객 행렬이 끊긴 이유는
일단 접근성이 너무 떨어집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장기역에서 출발하게 되는데 버스 환승을 하지 않으면 먹자골목과 한강중앙공원을 지나서야 비로소 초입에 도착합니다.
사실상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방문하기 어렵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현지인을 제외한 잠재 수요는 수도권 내외의 좁은 범위에 그칩니다. 지방이나 외국에서 굳이 찾아올 만큼 콘텐츠가 풍부하냐하면 그렇지도 않죠.
물은 경관요소에 불과합니다. 물이 아무리 맑아도 문보트를 타지 않으면 직접 사람이 닿을 일이 없죠. 도시 전체에 물길이 연결되어 곤돌라가 실제 교통 수단으로 이용되는 베네치아와는 다른 지점입니다.
당초 계획은 달랐죠. 2007년 한국도시설계학회가 한국토지공사에 제출한 ‘김포 신도시 특화방안 연구’에서는 친수공간에 대한 구상이 담겨 있습니다. 모래톱으로 친수공간을 조성하는 계획입니다. 현실성은 차치하더라도 확실히 지금과는 다른 경험이 계획돼 있었다는겁니다.
변변히 쉴 곳도 없습니다. 몇 군데 깔아놓은 파라솔과 벤치는 한 일행만 앉아도 꽉 찹니다. 보행공간에 머무는 시간은 그 시간만큼 고통이 누적되니 발길을 서두를 수 밖에 없습니다. 기껏 찾은 사람도 체류시간이 짧아지게 됩니다.
마스터플랜에서는 이걸 보완하기 위해 입체 회랑을 계획했죠. 3m 넓이의 회랑을 설치하고 위아래로 보행이 가능하도록 계획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계획과는 달랐습니다.
회랑은 구분상가의 전용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물건을 적치하거나 야외 테이블을 깔아놨죠. 도저히 보행공간으로 쓸 수 없는 상태입니다. 상층 보행구간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구분상가 특성상 각 상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게 설계되지도 않았죠. 상가마다 뚝뚝 끊겨있고, 상가를 통하지 않고선 1층으로 내려갈 수 없으니 그저 테라스에 불과합니다.
기후차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베네치아는 엄밀히 말해 바다 위의 도시이고 그래서 사시사철 물이 함께합니다. 여름에는 건조해서 쾌적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에선 야외활동이 자연스럽습니다.
한국은 다릅니다. 여름에는 끓고 겨울에는 얼죠. 그래서 금빛수로에도 겨울이 되면 물을 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날씨가 괜찮은 봄·가을에는 사람들이 찾을만 하지만 여름·겨울에는 파리만 날리게 됩니다.
물만 있고 도시는 없었다
콘텐츠도 빈약합니다. 1,600년 역사의 베네치아에 신도시가 비빌 수는 없죠. 수상레저부터 차이가 큽니다. 베네치아는 미로 같은 수로를 따라 곤돌라를 타고 도시 곳곳을 구경하게 되지만 금빛수로는 사실상 보트로 체험하는 도시 속 유수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축제는 분명한 효과가 있습니다만 그것도 일시적입니다. 음식점과 호프는 한국 상권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보트 한 번 타고, 사진 찍은 다음 식사하고 떠나고 나면 다시 찾을 일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메인 콘텐츠였던 유람선 계획도 흐지부지됐죠. 배가 다녀야한다고 청송교도 26.8억 원을 들여서 재가설을 했는데 유람선을 LH가 사냐, 시가 사냐고 다투다가 결국에는 계획이 증발해버렸습니다.
결국 가장 큰 문제는 공급입니다. 단일 시행사가 26개 필지 3만 3천여㎡를 사들여 9차에 걸쳐 구분상가로 분양했습니다. 일대 주민들의 주 소비처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실질적인 배후수요는 8개 단지 1만여 세대에 그칩니다. 1차적으로 롯데마트에 대부분의 수요를 뺏기고 남은 수요도 항아리상권, 장기역 상권과 갈라먹어야하죠.
일상적 소비의 상당부분이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치솟은 외식 물가에 외식 수요가 대폭 줄어든 지금은 더 힘든 상황입니다.
침체 이어지는 라베니체, 활로는 어디에
김포 라베니체는 김포시와 상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래가 그다지 밝아보이지는 않습니다. 대중교통 접근성과 콘텐츠를 고려하면 외국인 관광객 유치는 어불성설이고 일대 수요도 시원찮습니다. 수도권 내외의 좁은 범위에서 발생하는 일회성 방문객 수요에 의지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경제상황 때문에 모든 상권이 힘들긴 마찬가지라지만 특히 그 여파가 심해보이네요. 라베니체가 살아날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오늘도 한줄평으로 마치겠습니다. “’한국의~’ 어쩌고 하는 사람은 일단 피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