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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권 침해 vs 소수의 횡포...정비사업 알박기 논란 핵심은?

  • 정비사업
  • 입력 2023.06.08 09:15
  • 수정 2023.06.08 15:49

“재건축은 속도전”인데… 발목 잡는 ‘알박기’

 

재건축의 신이라고 불린 어느 조합장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재건축은 속도전이다’ 이 신탁에는 정비사업이 제자리걸음을 하면 손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사실과 함께, 지연을 막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려선 안 된다는 교훈까지 담고 있습니다.

이런 말이 신탁 내지는 상식 취급을 받는다는 건 그만큼 정비사업에 난관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워낙 많은 이권이 얽혀있다보니 항상 조합들은 내우외환에 시달리게 마련입니다.

그 중에서도 조합원들이 특히 이를 가는 걸 고르자면 ‘알박기’가 빠질 수 없습니다. 대강의 문제들은 조합원들끼리 양보하고 대화하면 해결이 되는데, 이건 조합원들이 똘똘 뭉쳐도 좀처럼 해결할 수 없어서 더 문제가 큽니다. 그럼 조합원들이 증오해 마지않는 알박기는 대체 왜 벌어지고, 막을 수도 없을까요?

 

“사랑제일교회 빼고 간다” 용단 내린 장위10구역

사진 : 리얼캐스트TV
사진 : 리얼캐스트TV

성북구 장위10구역은 결국 원만한 해결을 단념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조합은 지난 5월 10일 오후에 열린 임시총회에서 ‘사랑제일교회 제척’과 ‘사랑제일교회 종교시설 포괄적 합의 해제’ 안건을 가결시켰습니다.

전자는 재개발 사업에서 교회 부지를 아예 배제시키겠다는 것이고, 후자는 기존에 합의했던 이주조건(500억원+대토(2,429㎡)보상)을 백지화하겠다는 것입니다. 지난해에 이 합의안이 나왔을 때는 어떻게 사태가 마무리되나 했었는데, 교회가 대체 공간 마련에 실패하면서 결국 파탄에 이르고 말았네요.

교회 측에선 ‘성북구청장의 정치적 욕심과 조합장 대행의 사심’을 비난하며 ‘조합원들이 2,800억원의 금전적 손해를 보게 돼 안타깝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다만 찬성 비율을 보면 조합원들은 스스로를 그다지 안타깝게 여기지 않는 것 같긴 합니다. 조합은 교회 부지를 고스란히 내버려 둔 채 새로 정비계획을 세워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인허가를 다 새로 받아야 합니다만, 어쨌든 시공사 선정이나 이주∙철거는 끝났으니 착공까지의 기간은 상당부분 단축될 전망입니다.

 

보상기준 없는 종교시설… 브로커까지 갈등 부추겨

사진 : 리얼캐스트TV
사진 : 리얼캐스트TV

종교시설과 조합의 갈등은 사실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조합과 종교시설은 서로를 탐욕스럽다고 비난하게 되는데, 양자가 같은 취지의 주장을 하게 되는 핵심적인 이유는 적정한 보상의 기준이라고 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비사업의 보상은 도정법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법에서는 종교시설에 대해 어떻게 보상해라 하고 정해 놓은 게 없습니다. 딱히 종교용지를 챙겨주거나 종교시설을 지어주지 않아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생기지 않죠.

기존에 자리를 잡고 있던 종교시설 입장에서는 확실히 억울할 일입니다. 종교시설에겐 아파트가 아니라 사원(寺院, 교회∙성당∙사찰 등)이 필요한데, 조합은 아주 합법적으로 “아파트가 싫으면 돈 받고 떠나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현금 청산을 받은 종교시설은 보통 갈 데가 없습니다. 땅에 대한 보상금으로는 비슷한 지역에 땅을 사고 사원을 올릴 수 없으니, 온순하다면 지방으로 내려가고 과격하다면 머리띠를 두르고 농성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조합이라고 마냥 종교시설의 편의를 봐 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같은 조합원인데 종교시설이라고 특별취급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예전에 ‘서울시 뉴타운 지구 등 종교시설 처리방안’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이건 법적 구속력이 있는 지침은 아닌데, 종교시설에선 당연히 조합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종교시설의 이전이 불가피할 경우엔 1:1로 대토보상을 하고, 현재 종교시설 실제 건물의 연면적에 달하는 건축비를 조합이 부담하는 한편, 성물 등의 종교물품 제작비도 부담하고, 사업기간 동안에 종교활동을 위한 임시장소도 마련해주고, 이전비용도 조합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1:1 대토보상만으로도 불만스러운 얘기입니다. 일반 조합원은 세대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대지지분이 줄어드는데, 종교시설은 대지지분에 전혀 손해를 보지 않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조합원 간 형평성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종교시설이 이 정도만 요구하면 차라리 다행입니다. 조합원들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양보할 수도 있죠. 그런데 시장에서는 관련 컨설팅에 브로커까지 등장해서 보상금 갈등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쉽사리 지저분한 싸움판이 되고 마는 겁니다.

 

지분 적다고 무시할 수도 없어, 단지내 상가 ‘지분쪼개기’

사진 : 리얼캐스트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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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법에 보상안이 명시되어 있다고 다 괜찮은 것도 아닙니다. 단지내 상가가 있는 재건축 단지에서는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아파트 소유자와 상가 소유자 사이에 갈등이 발생합니다.

단지내 상가는 알박기의 좋은 소재입니다. 지분쪼개기를 통해 조합원 자격을 취득하고, 사업의 발목을 잡으며 버티다가 어떻게 잘 협상해서 낮은 권리가액으로도 좋은 산정비율을 적용 받아 분양권을 따낼 수 있습니다.

최근 부산에서는 기상천외한 상가 지분쪼개기 사태가 발생했죠. 한 법인이 대우 마리나 1차 상가 지하 1층을 매입해서 123개로 쪼개서 판 겁니다. 총 53실이던 상가 수가 175실로 3배 이상 뻥튀기 됐습니다. 깜짝 놀란 정부에서 도정법 개정에 착수할 정도로 굉장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상가 지분쪼개기는 소위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문제를 야기합니다. 재건축 조합을 설립하려면 ①동별 구분소유자 과반수와 ②전체 구분소유자 3/4, ③토지면적 3/4 이상이 동의해야 합니다. 상가동에서도 구분소유자 과반수가 찬성을 해야 하는데, 상가 구분소유자들이 안 한다고 드러누우면 조합설립도 못하게 됩니다.

 

상가 알박기, 안고 가거나 떼고 가거나

사진 : 리얼캐스트TV
사진 : 리얼캐스트TV

조합들은 이런 문제에 보통 두 가지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방식이 그냥 상가를 떼버리는 방법입니다. 개포우성5차는 상가를 재건축 사업에서 제척해버리기 위한 소송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상가의 발목 잡기를 피하기 위해 서로 묶인 사슬을 끊어버리는 방식이죠.

두 번째 방식은 그냥 시원하게 요구사항을 들어줘 버리는 겁니다. 앞서 소개한 ‘재건축의 신’이 내렸다는 신탁 중에는 “나한테 연봉 20억을 줘도 7년 안에 입주하면 조합원들이 이득”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이것과 맥락이 상통합니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는 최근 상가협의회와의 합의에 성공했습니다. 합의 내용에는 상가조합원이 아파트를 받을 수 있는 산정비율을 0.1로 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산정비율은 상가조합원이 아파트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인데요. 분양가에 산정비율을 곱한 값이 권리가액보다 높아야 1주택을 분양받을 수 있습니다. 보통은 1.0으로 하니까 권리가액이 분양가만큼 나와야 1주택을 분양 받을 수 있는데요. 산정비율을 0.1로 했다는 건 권리가액이 분양가의 1/10이라도 아파트 분양권이 나온다는 얘기입니다.

조합 전체로 보면 대승적인 결단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지나친 특혜로 볼 수도 있겠죠. 앞서 같은 선택을 했던 신반포2차에서는 해당 결의가 무효라며 신통기획추진위가 조합을 상대로 소송전을 전개하고 있기도 합니다.

 

알박기는 ‘부당이득’… 단, 고의성은 입증하기 힘들어

사진 : 리얼캐스트TV
사진 : 리얼캐스트TV

물론 고의적인 알박기는 형법상 부당이득죄로 다룰 수 있습니다. 다만 법원에서는 분명한 고의와 적극성으로 피해자를 궁박(급박한 곤궁)에 빠뜨려야 부당이득으로 다룰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 사업에 방해가 된다고 다 알박기라고 매도할 수는 없는 일이니, 행여 정비사업에 진입하려면 혹시라도 종교시설이나 단지내 상가가 없는지도 잘 확인해보고 들어가는 게 예방책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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