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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에 4개 국어까지? 요즘 아파트이름 왜 이렇게 지을까? | 아파트 네이밍의 경제학

복잡해도 너무 복잡한 아파트 이름

 

“기사님 래미안 서초 에스티지S로 가주세요” 지난 주말, 지인의 집에 방문하기 위해 택시를 탔을 때 했던 말입니다. 비교적 최근 지어진 아파트들의 이름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지고 복잡해졌습니다. ‘압구정 현대’, ‘대치쌍용’ 등 지역과 건설사의 이름으로만 불렸던 아파트들의 이름은 왜 이렇게 어렵게 지어지고 있을까요? 리얼캐스트TV가 아파트 네이밍의 변천사를 알아봤습니다. 

 

아파트 네이밍의 변천사

우리나라 아파트 네이밍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참으로 재밌습니다. 2000년대 이전에 지어진 구축 아파트들의 이름은 매우 직관적이었는데요. ‘목동 1단지’, ‘압구정 현대’ 방배 우성’ 등 행정구역과 건설사의 이름이 합쳐진 것이 일반적이었죠. 

하지만 이러한 네이밍은 1999년을 기점으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건설사들이 고유의 브랜드를 만들어 아파트 이름에 삽입했기 때문인데요. 롯데건설의 롯데캐슬을 기점으로 래미안(삼성물산), e-편한세상(대림산업), 힐스테이트(현대건설), 자이(GS건설), 아이파크(현대산업개발), 푸르지오(대우건설), 포레나(한화건설) 등이 탄생하며 아파트 이름에 본격적으로 브랜드가 등장했습니다.

이처럼 아파트 이름에 브랜드가 등장하자, 소비자의 반응은 상당히 뜨거웠습니다. 똑같은 아파트라 할지라도 이름 때문에 뭔가 있어 보이는 곳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죠. 이러한 호응에 힘입어 2014년 이후부터 건설사들은 아크로, 디에이치, 푸르지오 써밋 등 프리미엄 브랜드를 런칭했습니다. 차별화를 강조하여 소비자를 사로잡기 시작한 것이죠.

그러나 건설사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최근 지어진 신축 아파트들의 이름을 보면, 그 뜻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어려운데요. 단순히 브랜드 이름을 넘어 불어와 이태리어 등 각종 국가의 단어들을 조합해 일명 펫네임(Pet Name)을 붙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가령 2018년 11월 준공된, ‘래미안 개포 루체하임’은 아파트 이름에 총 4가지의 뜻이 담겨있는데요. 삼성물산이 시공하였기에 브랜드 이름인 래미안이 삽입되었으며, 행정구역인 개포가 들어가 있죠. 여기에 빛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루체(Luce)’에 집을 뜻하는 독일어 ‘하임(Heim)을 합성했습니다. 직역하자면 개포동에 위치하면서 삼성물산이 지은 빛이 있는 집이라고 할 수 있죠.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있는 ‘래미안 DMC 루센티아’는 은은하게 빛난다라는 의미의 ‘루센트(Lucent)’와 중심을 뜻하는 ‘센터(Center)’, 마지막으로 휘장을 뜻하는 ‘인시그니아(Insignia)’를 결합해서 지었습니다. 이 외에도 ‘래미안 첼리투스’, ‘고덕 아르테온’, ‘송파 헬리오시티’ 등 다양한 단지에서 펫네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파트 네이밍의 불편한 진실

이처럼 아파트 이름이 복잡해진 이유는 결국 집값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아파트 이름에 따라 구축 아파트와 신축 아파트가 자연스럽게 구분되고, 이는 향후 시세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인데요.

 

고급스러운 이름의 브랜드 아파트와 지난 몇 년간 급상승한 부동산 가격에 맞물려 시세 상승을 기대하며 기존 아파트들의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령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포일자이’는 최근 단지명을 ‘인덕원센트럴자이’로 바꾸었는데요. GTX가 정차하는 인덕원역 호재를 반영하기 위해 단지명에 인덕원을 삽입한 후, 펫네임인 센트럴자이를 추가했죠. 실제로 해당 단지는 행정구역상 인덕원에 위치해 있다고 보기 어려움에도 단지명을 변경했습니다.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신정뉴타운롯데캐슬’은 단지명을 ‘목동센트럴롯데캐슬’로 바꾸기 위해 지난 2020년 말, 양천구청에 명칭 변경 신청서를 냈습니다. 아무래도 신정뉴타운보다 조금 더 부촌으로 인식되는 목동을 단지명에 넣고 싶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요. 하지만 양천구청은 신월동 소재인데 목동으로 표시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며 신청을 반려했죠. 이에 입주민들은 이듬해 2월, 소송까지 불사했습니다. 그만큼 현재 부동산 시장에서 아파트 네이밍은 중요하게 자리 잡은 상황입니다.

 

실제로 아파트 명칭 변경에 따라 거래 가격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는 논문도 발표됐는데요. 지난해 한국부동산분석학회가 발행한 <명칭 변경 사례를 통해 살펴본 아파트 브랜드 프리미엄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에 따르면, 수치적으로 명칭 변경을 통한 브랜드 효과의 경우 약 7.85%의 가격 상승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가령 앞서 언급한 인덕원센트럴자이의 실거래가를 살펴보겠습니다. 해당 단지는 2021년 7월경 네이밍이 변경이 확정되자마자 이전 거래 대비 무려 1억원이 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물론 부동산 시장이 호황기였기 때문에 단순히 네이밍 변경으로 인한 거래가격 상승이라 보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어느정도 영향을 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하지만 이처럼 아파트 이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자 사회적으로 안타까운 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따르면 최근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LH나 휴먼시아 등의 이름이 들어간 아파트에 거주한 친구들을 ‘엘사거지(LH에 사는 거지)’, ‘휴거(휴먼시아에 사는 거지)’라 부르며 조롱한다고 하는데요. 아파트 이름에 따라 친구들끼리 급 나누기를 하며 비하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결국 공공 아파트 네이밍 논란은 청와대 국민 청원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는데요. 작년 3월, ‘신혼희망타운 입주예정자를 두 번 울리는 부패한 LH’란 제목으로 올라온 청원은 참여 인원만 1만4,000여명을 넘어섰습니다. 해당 글의 작성자는 ‘LH 로고를 사용하면 그 아파트에 거주하는 입주민만 피해”라며 아파트 명칭에 LH를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을 피력했죠.

하지만 이와 반대로 공공분양 아파트에 자이나 래미안 등 민간 브랜드의 이름을 적용하지 말자는 신종 ‘님비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민간 브랜드에 거주하는 A씨는 “아파트를 매수할 때 브랜드 이름도 중요한 기준으로 생각했는데 같은 지역의 LH 아파트가 동일한 브랜드의 이름으로 바뀌면서 살고 있는 아파트의 가치가 떨어질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아파트 네이밍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는데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아파트의 명칭, 정말 중요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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