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하이엔드 오피스텔이 처참히 망한 이유
- '20억 원룸' 결국 미입주 폭탄 - 비싸게 산 땅에 ‘하이엔드’ 포장 - 소비자 외면… 줄줄이 공매행
5년 전 강남 일대에는 ‘하이엔드 오피스텔’이 인기였습니다. 기억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소형 오피스텔을 평당 억대로 분양했죠. 1.5룸이 근 20억에 달했는데, 이게 의외로 크게 흥행해서 화제였습니다. 그런데 이 ‘하이엔드 오피스텔’들,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20억 원룸 ‘무더기 공매’… 156실 중 100실 미입주
양재역 초역세권의 ‘르니드 서초’는 결국 100실이 무더기로 공매로 나왔습니다. 전체 호실수가 156실이니 셋 중 둘이 미입주했다는 얘기입니다. 이 단지는 2021년부터 분양에 나섰는데요. 다수 호실이 주인을 못찾고 결국 올해 4월에 EOD를 냈습니다.
입지도 양재역 초역세권이고, 시공도 롯데건설인데 아무래도 가격이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입니다. 분리형 원룸을 최소 14억 6천만 원에 팔았거든요.
이게 제3자 입장에서 보면 그런가보다 싶은데 임대수익을 번다고 생각하면 말도 안 됩니다. 분양가 70%를 연 5%로 빌린다고 치면 이자만 월 425만 원에 달합니다. 월세를 그 이상 받지 못하면 매달 손실이 누적되죠. 실제 현장 시세도 400만 원 선입니다.
일정 부분 손실을 감수한 매물이 나오고 있지만, 실제 거래는 거의 되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 거래가 성사된 건 딱 한 건, 보증금 1000에 300만 원 짜리 거래였습니다.
사실 가격을 상당히 낮췄다 하더라도 여전히 거래가 성사되기는 어려운 수준입니다. 월 300을 내면 그냥 아파트로 가는게 유리하죠. 실제로 이웃한 서초두산위브 전용 57㎡도 월세가 1억에 240만 원입니다.
이런 가격차에도 불구하고 오직 상품성, 신축만 보고 더 좁은 르니드를 선택해 줄 특별한 수요가 있어야 하는데, 그 수요가 그다지 크지는 않습니다.
총 8회차에 걸쳐 진행되는 이번 공매는 대부분 유찰됐습니다. 시작이 20억이라 이대로 8회차까지 간다 한들 최저 입찰가격이 여전히 12억 원이 넘습니다. 채산성이 전혀 안나옵니다.
비단 이 시설만의 얘기도 아닙니다. 강남 일대 하이엔드 오피스텔은 하나같이 대규모 공실 사태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세움터 자료를 전수조사했는데요. 논현동 아츠논현은 도생, 오피스텔 다 합쳐서 총 66실 가운데 18실이 미입주한 상태입니다. 전체 27.3%입니다. 심지어 이 시설의 입주율은 양호한 편입니다. 바로 길 건너편에는 작년 말 입주한 보타니끄 논현이 있는데요. 여기는 전체 71실 가운데 딱 11실이 입주했습니다. 84.5%가 미입주한 겁니다.
분양가를 최소 20억에 잡았던 도산대로 도산 포도더블랙도 입주율에 아쉬움이 큽니다. 분양 당시 분양률은 97%에 달했다고는 하나, 시행사에 따르면 7월 28일 기준 실제 소유권이 신탁사에서 개인(법인)으로 이전된 호실은 17세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디벨로퍼들에게 ‘하이엔드’ 포장이 필요했던 이유
하이엔드 오피스텔이 처음 소개될 무렵에는 1~2인 가구의 증가와 영앤리치의 등장이 이런 상품을 요구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었는데요. 사실 그 바닥에는 그런 어렴풋한 시대상이 아니라 단단한 돈의 논리가 있었습니다.
“2018년부터 서울 땅값이 엄청 올랐어요. 분양이 잘되니까 디벨로퍼들이 땅을 엄청 샀죠. 당연히 강남이 제일 인기였는데, 강남이니까 싸게는 안 팔았단 말이죠. 디벨로퍼는 비싸게 땅을 샀는데 평범하게 개발하면 도저히 사업성이 안나오니까, 하이엔드라는 포장이 필요했던 거예요.” - 부동산인포 권일 리서치팀장
실제로 당시 강남 땅값은 역대급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2018년에만 연간 6%대 상승률을 기록했고 이 상승세는 2021년까지 4년간 이어졌죠.
당시는 팬데믹 극복을 위한 양적완화로 유동성이 어마어마하게 공급된 시기였고, 부동산 광풍이 나라 전체를 휩쓸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정부가 나섰습니다. 연이은 규제로 주택시장을 걸어잠갔죠. 이 풍선효과가 하이엔드 오피스텔로 번졌습니다.
“투자 허들이 많이 낮았죠. 전매도 제한 없고, 15억 초과 대출규제도 해당사항이 없으니까. 당시에 부자들도 돈 쌓아놓을데가 필요해서 자녀 명의로 사놓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여기에 투자자들까지 붙으면서 과열이 됐죠.” - 부동산인포 권일 리서치팀장
하이엔드 오피스텔의 인기는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미국발 금리인상으로 돈줄이 끊기자 부동산 시장이 급속도로 가라앉았죠. 진행이 되던 사업들도 대거 좌초합니다.
실제 완성된 결과물도 기대 이하였습니다. 하이엔드 포장의 한계는 명백했죠. 당장 주차장만 봐도 이해가 됩니다. 나인원한남, 에테르노 청담 같은 초고가 하이엔드 주거시설의 경우 세대당 4~5대의 주차공간이 나옵니다. 반면에 강남권 ‘하이엔드 오피스텔’은 한 호실에 1대가 고작이고, 그 와중에 절반 이상이 기계식입니다. 도저히 ‘하이엔드’라 볼 수 없는 여건입니다.
하이엔드가 아니니 남은 건 결국 ‘강남’밖에 없는데, 사실 이 부분도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이런 하이엔드 오피스텔은 주로 논현동에 공급됐는데요. 이런 시설의 주 소비층으로 예상했던 소비력이 넘치는 강남 부자들은 청담, 압구정을 벗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논현, 신사로 가는 걸 싫어하죠.
그 정도 돈을 써 줄 사람 입장에선 하이엔드도, 강남도 아닌 그냥 다른 동네 오피스텔이라는 얘깁니다.
사업 중단·공매 속출… 자취 감추는 하이엔드 오피스텔
당분간 하이엔드 오피스텔 소식은 듣기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주요 사업장들이 대부분 문을 닫고 있죠.
집을 최소 200억 원으로 팔면서 심지어 입주자도 면접을 봐서 고르겠다고 밝힌 논현동 ‘포도바이펜디까사’는 토지 공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800억 원 규모 브릿지론의 본PF 전환이 실패하면서 대주단이 자금회수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토지 감정가가 3,100억 원 정도인데요. 7월 15일까지 네 차례 유찰되면서 최저입찰가가 3,713억에서 3,024억으로 줄었습니다. 9월까지 계속 유찰을 거듭하게 되면 2,340억 원까지 최저입찰가격이 내려가게 됩니다.
강남 1급지 청담도 지금은 힘을 못씁니다. 청담501도, 루시아청담514도 EOD를 냈습니다. 청담501부지는 공매에 넘겨졌는데, 연이은 유찰로 최저입찰가가 추락하자 일단 공매가 취소된 상황이고, 루시아청담514도 생명 연장이 한번 됐는데 착공도 못한 채 사업이 멈춰있는 상태입니다.
이 와중에 다른 방식으로 생존한 사업도 있습니다. 남산뷰로 시선을 끌었던 충무로2가 ‘버밀리언 남산’도 미분양을 앓았는데요. 방향을 틀어서 오피스를 짓는 중입니다. 평당 9,300만 원 정도로 분양을 했었는데 받았던 돈을 다 돌려줬다고 하네요. 워낙 시황이 안좋다보니 수분양자들의 저항도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고급스러운 콘크리트 무덤’ 주의보
한 때 꿈을 팔았던 ‘하이엔드 오피스텔’, 하이엔드 포장지가 벗겨진 지금은 고급스러운 콘크리트 무덤이 됐습니다.
지금도 비싼 호가가 유지되고 있는 건 공급자도 들인 돈이 있으니 분양가, 호가를 낮추지 못할 뿐입니다. 그 정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할 수 없죠. 행여 투자를 권하는 사람이 있으면 조심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오늘도 한 줄 평으로 마치겠습니다. “그냥 우량주를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