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텅 빈 판교, 개발자 탈출 중(이수호 작가)

2025-03-04     한민숙 기자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판교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창업 열풍과 도전 정신이 넘치던 역동적인 분위기와 달리 현재는 혁신적 열정이 크게 쇠퇴하고 있는데요. 판교의 현재 모습을 테크노베이션 이수호 작가를 만나 들어봤습니다.

 


동력 잃어버린 판교


2013년부터 판교에 위치한 기업들을 관찰하고 취재하며, 현장에서 활동하는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보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상당히 많은 사업자들이 존재하였으며, 동시에 소프트웨어 및 고객 데이터를 보유한 기업들이 적절한 가치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현재는 어느 정도 발전하여, 심지어 대기업 형태로 자리잡은 기업들도 많이 있으나, 이와 동시에 혁신 사례를 보이는 소규모 기업들과 꿈이 많은 기업들이 제대로 된 가치 평가를 받지 못하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술이 축적되어 플랫폼 형태로 전환됨에 따라, 결국 대기업이 소기업을 흡수하는 양상이 나타나면서 산업화는 이루어졌으나, 과거에 비해 열정적이고 역동적인 분위기는 많이 사라진 것으로 판단됩니다.

 


10년 전과 다른 판교 현황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력이라고 생각됩니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여러 차례 출장을 다녀온 결과, 현지에서는 새벽까지 근무하시며 다양한 복리후생을 제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판교 역시 초기에는 대규모 자본이 유입되는 기업들이 많지 않아, 상장이 가능한 기업에 적극적으로 취업한 인재들이 밤새도록 근무하며 성공을 꿈꾸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기업이 기업 공개를 완료했으며, 거대한 AI 흐름 속에서 엔지니어들조차 AI 및 다양한 솔루션 도구에 의해 점차 일자리를 잃어가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특히 게임 업계에서는 약 10년 전만 해도 주니어 직원들이 높은 수익을 올리는 사례가 많았으나, 현재는 대형 엔진사가 다양한 솔루션을 부품처럼 제공함에 따라 인력 소요가 감소하고, 관리 및 서비스 문제 역시 전산화되어 고용이 축소되고 있습니다.

신입 인력의 채용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경력직들이 상시 이동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으며, 한 네이버 관계자에 따르면 과거 10대 1 또는 15대 1의 경력 경쟁률이 존재하던 개발자 채용 건에 90명의 서류 지원자가 접수됐다고 합니다.

한편, NC소프트 및 판교 소재 게임사들이 이미 5,000명에서 6,000명의 직원을 3,000명까지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대표이사가 공개함에 따라, 이와 관련하여 규모가 작은 기업의 직원들 또한 고용 불안을 겪고 있어 노조가 깊이 개입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게임사 오너 및 경영진은 향후 젊은 인력을 대량 채용하여 노조화가 진행될 가능성을 우려, 채용을 더욱 축소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소위 MZ세대를 대상으로 한 채용 수요가 여러 측면에서 감소하고 있으며, AI의 영향으로 실제 채용 인원도 줄어들고 있어, 판교 테크노밸리에 위치한 식당, 주점, 호프집 등의 분위기도 최근 악화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 야근이 크게 줄어들고 야간 근무에 많은 제약이 발생함에 따라, 과거와 같이 대박의 성공 사례를 꿈꾸며 '밤새도록' 근무하도록 강요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왜 AI 생태계에서 밀렸나?


우리나라 기업들의 인공지능(AI) 역량이 부족하다는 측면보다, 국가 및 정치권의 적극적인 지원이 더욱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AI 경쟁은 궁극적으로 데이터의 규모와 대규모 고객 풀을 보유한 기업 및 서비스가 유리한 구조에서 이루어지는데, 미국의 경우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미국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으며, 유튜브나 주요 소비재 앱 역시 미국 기업의 서비스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게임이나 영상과 같은 콘텐츠 분야에서도 데이터를 처리·저장하고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반은 대부분 미국 기업의 리소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전 규제보다는 사후 규제 체계를 도입하여 도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잘못에 대해 징계를 내리더라도 부정적인 규제 스탠스를 완화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특정 사건으로 국민 일부가 피해를 입을 경우 관련 산업에 대한 진입 장벽을 높이는 경향이 있어, 인터넷 기업들이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축적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고객 풀을 확대하는데 제약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AI 서비스와 AI 기업 경쟁 측면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불리한 환경에 놓이게 된다고 판단됩니다.

더불어, 자국의 SNS, 포털, 웹브라우저 등을 보유한 국가는 많지 않으며, 유럽조차도 미국의 서비스를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반면, 러시아나 중국과 같이 권위주의 국가들만이 자국 인터넷 및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장벽을 구축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유 진영에서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미국 및 해외 기업과 경쟁하며 자국 기술과 데이터를 지켜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보다 많은 이익과 권한을 부여해야 하나, 정치권은 이에 대해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 국민들도 네이버, 카카오톡, 네이버 웹브라우저를 사용하면서 자국 데이터를 보호하고 있다는 점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치권에서도 텔레그램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한국어 사용자 수가 전 세계적으로 적어 스페인어, 중국어, 영어 사용권처럼 방대한 데이터 풀이 존재하지 않는 점도 한계로 작용하므로, 테크 기업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와 긍정적인 시각의 다각화된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AI 시대, 기업이 무너지는 과정


현재 우리가 쇼핑을 하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인공지능(AI)이 탑재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들 서비스는 개인의 생애 주기를 세밀하게 파악해 해당 개인이 언제 얼마의 소비를 할 것인지, 가족 구성원은 어떠한지를 비롯한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비 행태를 예측합니다.

바꿔 말하면 이러한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한 기업들, 특히 오프라인 중심의 기업이나 온라인 분야에 속하는 일부 기업들은 이미 다수 파산하거나 위축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자본력이 우수한 기업에 인수되는 사례도 많습니다. 최근 우리나라 최대 유통사인 신세계가 보유하던 이커머스 기업이 사실상 대부분의 지분을 중국 기업에 양도했습니다. 이는 인터넷 기업들이 주도하는 시장 환경에서 전통 오프라인 유통사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롯데기업 역시 현재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는 보도가 언론을 통해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유통업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인 만큼 인구 감소 및 내수 부진 등의 영향도 분명히 작용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온·오프라인이 혼합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이나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기업들이 위축되며 다수의 인력이 유출되는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단순히 채용 및 고용 문제를 넘어, 이러한 기업들의 밸류에이션 멀티플을 재검토해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국내 AI 기술, 중국에 추월당하나?


중국이 우리나라 기업을 단순히 인수하거나 흡수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닙니다.

실제로 국내 대형 인터넷 플레이어 중 살아남은 소수의 기업들은 앞으로 더욱 성장할 전망입니다.

다만, 이들 기업의 모수가 많지 않다는 점과, 해당 기업에 소속된 인재들이 판교를 떠나는 경우가 상당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일례로 작년에 IPO를 실시한 시프트업이라는 기업은 판교에 거점을 두고 있지는 않으나, 종사자 대부분이 판교 출신입니다. 이러한 기업들은 해외에서도 플랫폼 형태는 아니더라도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와 같은 사례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이들의 숫자가 많지 않고, 대성공을 거둔 기업들조차 직원 수가 크게 증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에, 국가적으로는 양질의 일자리를 확보하고 국내 거점을 마련해 채용을 촉진하고 가정을 꾸리며 부동산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어야 하는 상황에서 안타까운 현실로 다가옵니다.

또한, 우리나라 기업들이 플랫폼 구축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 사업을 시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이를 투기 행위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어 원활한 추진에 제약이 많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판교 테크노밸리 출신 인재들이 해외로 거점을 이전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판교 테크노밸리 인재들을 국내에 정착시키지 못하는 문제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