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천 억 걷히는 장기수선충당금...관리는 여전히 '깜깜이?'

2024-01-25     김영환 기자

월 2천억 걷는 장기수선충당금… 관리는 여전히 ‘눈먼돈’?

<마포래미안푸르지오에 사는 A씨는 10월 관리비 고지서를 가만히 들여보다 깜짝 놀랐다. 무심코 넘겨왔던 장기수선충당금이 1만 5천원을 넘은 것이다. 분명 3년 전 입주할 때만 해도 8천원대였는데… 상승률로 따져보니 87%가 넘는다. 어느 새 이렇게나 올랐는지 모를 일이다.>

<청담동 A아파트 107㎡ 주민 B씨는 장기수선충당금 인상안에 혀를 내둘렀다. 관리실에선 2030년까지 장충금 단가를 5배 가까이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지금도 장충금을 한 달에 4만원씩 내고 있는데, 7년 뒤에는 월 20만 원을 내야 하는 셈이다. 1년이면 240만 원이다.>

 

공동주택 장기수선충당금이 대단한 속도로 오르고 있습니다. 공동주택관리 정보시스템(K-apt)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전국에서 걷힌 장기수선충당금은 총 2,01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같은 달(1,649억 원)대비 21% 늘었습니다.

관리비 고지서에 섞여 청구되는 이 돈은 보통 세대별로 1~2만원 정도의 소액이 청구되어 왔기 때문에 주목도가 높지는 않았죠. 하지만 청구금액이 점점 소액의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내라는 대로 내기만 했던 관리비 세부내역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부실·비리 의혹 계속되는 장충금, 2024년도 현재진행형?

장기수선충당금은 공동주택 소유자들이 주택의 장기적인 수선을 위해 모아두는 돈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도 오래 되면 벽에 균열이 생기거나, 엘리베이터가 노후해서 위험할 수 있죠. 이런 보수나 교체에는 큰 돈이 들기 때문에, 미리 관리비와 함께 적립하는 것입니다.

장기수선충당금의 징수를 위한 근거는 공동주택관리법에 마련되어 있는데요. 실제 운영은 입주민대표회의(이하 입대의)의 자치에 맡겨져 있어 부실이나 비리에 관한 지적이 이어져 왔습니다. 대표적인 문제로는 △장기수선계획의 부실 관리 △당장의 관리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과소적립 △주요설비 교체 시기 임의 연장 등이 꼽힙니다.

이 가운데는 △입찰 관련 비리도 대표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2015년 대구 달서구에 위치한 A 아파트에서는 한 동대표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특허공법을 시방서에 요구하고, 장기수선충당금에서 해당 공사에 배정된 금액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특정 업체를 밀어주다 문제가 불거져 형사처벌을 받기도 했죠.

관련 문제는 오랜 기간 지적되어 왔으나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토부에서 합동점검을 하고 서울시에서 관련 규약 준칙을 개정하는 등의 노력이 있었지만, 최근에도 마포구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감사한 10개 단지에서 관리비 관련 229개 위반사항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해당 감사에서는 장기수선충당금 분야에 24건의 위반사항이 드러났고, 공사용역에선 105건의 문제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마포구는 장기수선계획에 따라 사용해야 할 △장기수선충당금을 소송비용으로 유용하거나, △동대표로 장기 집권하며 수십억 원의 장기수선충당금을 소진하고, 입주자 동의도 없이 충당금 징수액을 높인 사례도 적발했다고 밝혔습니다.

 

장기수선 공사 시장규모 1조원 넘었다

장기수선충당금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입니다만, 비용 부담은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습니다. 공동주택관리 정보시스템(K-apt)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전국 아파트 장기수선충당금 월부과액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9% 올라 242원/㎡(주거전용면적 기준)을 기록했습니다.

고작 5년 전인 2019년에 기록한 170원/㎡ 대비 57.1% 늘어난 수치입니다. 연평균 9.5%씩 상승한 겁니다. 전용 84㎡ 아파트로 환산하면 연간 약 7만 2천원(월 14,280원→20,328원)을 더 내게 된 셈입니다.

장기수선충당금 부담 상승의 대표적인 원인으로는 공사비 상승이 꼽힙니다. 장기수선 관련 시장규모는 1조원을 돌파했죠. K-apt에서 집계한 바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장기수선 공사 낙찰금액은 총 1조 81억 원으로, 2021년 기록한 5,594억 원 대비 80.2% 늘었습니다.

각 세대가 내야 하는 비용도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2023년 기준 도장(외벽균열, 감리 등 포함) 관련 공사의 전체 낙찰금액(경쟁입찰)은 5,186억 원으로, 세대당 평균 비용은 58.5만 원 수준이었는데요. 2021년만 해도 이 비용은 47만 4천원 수준에 그쳤습니다. 2년만에 10만원이 넘게 올랐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인건비, 건자재비 등이 상승한 영향이 크다”고 설명하면서도 “개별 단지에 따라 장기수선충당금이 투명하게 운영되지 않는 경우도 분명히 있으니, 주민들도 적극적으로 운영실태에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전·월세 임차인은 환급 받을 수 있어… 단, ‘특약’은 유효

장기수선충당금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시장에서는 관련 노하우도 공유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전·월세 임차인의 장기수선충당금 환급입니다. 장기수선충당금은 원래 소유자가 내야 하는 돈이지만 편의상 관리비에 포함해서 징수한 것이기 때문에, 전·월세 임차인은 소유자 대신 낸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죠.

환급의 근거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임차인이 장기수선충당금을 소유자를 대신해서 납부한 경우에는 그 금액을 반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죠. 이사를 가기 전에 관리사무소에 방문해서 납부확인서를 발급받아 임대인에게 반환을 요청하면 됩니다.

종종 임대인이 반환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월 2만원씩이라도 2년을 꼬박 냈다면 48만 원이나 되기 때문이죠. 이때는 반환소송을 진행해서 돌려받을 수 있고, 민사채권 소멸시효가 10년이니 이사를 나온 지 한참 시간이 지났더라도 청구해서 받을 수 있습니다.

단, 업계 관계자는 “임대차계약 당시 작성한 ‘장기수선충당금은 임차인이 부담한다’는 특약은 유효하기 때문에, 해당 특약이 있다면 반환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