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주택일수록 시세 반영률 낮아... 공시가격 '깜깜이 산정' 논란
올해 서울 고가주택의 공시가격이 실거래가 대비 크게 낮게 책정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거래가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단지도 수두룩합니다. 정부가 내년도 공동주택 현실화율을 69%로 동결한 가운데, 들쭉날쭉한 기준으로 진행되는 ‘깜깜이 산정’의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집값 비쌀수록 시세 반영률 낮았다… 시세보다 50억 낮은 아파트도 있어
부동산인포가 국토부 및 한국감정원 자료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60억 원 이상으로 거래된 서울 아파트 42채의 공시가격에 실거래가가 반영된 비율(이하 반영률)은 평균 61.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동결한 공동주택 공시가격 현실화율 69%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반영률이 가장 낮았던 단지는 50%대 초반에 불과했습니다. 갤러리아포레 전용 217㎡ 42층 매물은 지난해 6월에 최고 88억 원으로 실거래가 성사되었는데요. 해당 주택의 올해 공시가격은 47억 3,500만 원으로 반영률이 53.8%에 그쳤습니다. 공시가격이 실거래가의 절반에 불과했습니다.
공시가격 대비 실거래가의 차이가 50억이 넘는 단지도 나왔습니다. 용산구 한남동 파르크한남은 전용 268㎡가 135억 원으로 거래되었는데요. 올해 공시가격은 81억 3,100만 원에 그쳤습니다. 공시가격과 실거래가의 차이가 53억 6,900만 원에 달합니다.
집값이 비쌀수록 실거래가 반영률은 더 낮아지는 경향도 나타났습니다.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퍼스티지의 경우, 실거래가 최고 60억 원으로 거래된 168㎡의 공시가격이 37억 원(반영률 61.7%)으로 책정되었는데요. 84억 원으로 실거래된 222㎡의 공시가격은 45억 6,200만 원으로 발표되었습니다. 반영률로 계산하면 54.3%에 불과합니다.
지난 11월 30일에 참여연대가 진행한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사실상 폐기 긴급 좌담회’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왔습니다. 공시제도 문제점을 지적한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실거래가 70억 이상인 아파트의 공시가격은 실거래가 대비 30억 원 이상 낮다”고 지적하며, 고가주택의 공시가격이 근거 없이 하락되는 사례도 발견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고가주택의 경우 공시가격이 1~2%만 낮아져도 수억 원의 과세표준 축소 효과가 생긴다. 시각에 따라서는 ‘부자감세’ 의혹도 제기할 수 있는 대목인데, 산정근거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으니 공정성 시비를 피하기 어렵다”고 전했습니다.
정부, 부동산 공시제도 개선한다… ‘깜깜이 산정’ 해결될까?
공시가격 산정의 공정성 및 정확성 시비는 제도 도입 이후로 계속해서 제기되어 왔습니다. 한국부동산원이 산정을 도맡아 진행하는 가운데, 산정기준도 충분히 공개되지 않으니 공시가격이 공개될 때마다 이의신청이 줄을 이었죠.
2019년에는 대형 사고도 있었습니다. 성수동 갤러리아포레와 트리마제의 특정 면적이 층수와 관계없이 같은 공시가격이 산정된 ‘엉터리 공시가격’이 나왔죠. 해당 사고는 층별 보정률을 ‘1’로 일괄 적용하고 고치지 않은 직원의 실수로 밝혀졌고, 이후 대규모 수정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깜깜이 산정’ 시비를 피하기 위해 ’20년부터 산정기초자료를 개별 공시가격과 함께 공개하기 시작했는데요. A4용지 1매 분량의 기초 정보만 제공될 뿐 산정 방식 등은 공개되지 않아 빈축을 사기도 했습니다.
관련 시비가 매년 계속되자 이번에는 국토부가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지난 10월 깜깜이 공시가격 산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부동산 공시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는데요. 주된 문제점으로 △한국부동산원의 부정확한 가격산정에 따른 잦은 오류, △산정근거 미공개, 셀프검증 등 깜깜이 공시를 지적하고 개선안을 제시했습니다.
개선 방안에 따르면 국토부는 2025년까지 한국부동산원 조사인력을 33% 늘려 업무부담을 줄이고, 관련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한편, 지자체가 개별공시가격 산정에 활용하는 비준표를 검증·개선할 계획입니다.
시도별로는 공시가격 검증센터를 설치해서 검증의 객관성을 확보하고, 이후 층과 향, 조망, 소음 등 가격결정요인 공개하는 한편 조사자의 성명과 연락처까지 공개하는 실명제를 도입해 책임 있는 산정도 유도한다고 하네요. 이번 개선 방안은 공시가격의 신뢰도를 충분히 높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