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물 건너간 실거주 의무 폐지... 둔촌주공 입주자들 뒷통수 맞았다 

2023-12-08     박지혜 기자

주요 부동산 법안들이 국회 법안소위 문턱을 넘으며 연내 처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국회 문턱에 가로막혀 표류 중인 법안이 있습니다. 전매제한 완화의 패키지 격인 실거주 의무 폐지 법안입니다. 법안의 계류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부동산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결국 물거품되나… 실거주 의무 폐지 논의 불발 

정부가 전매제한 완화가 함께 시행하려고 했던 실거주 의무 폐지가 국회에 발이 묶인 채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올해 초 발표된 1·3대책을 통해 4월부터 전매제한은 완화됐지만 실거주 의무 폐지는 개정안 발의 이후 1년째 진전 없이 표류 중이었는데요.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5월말 법안심사소위 때 이후로 논의되지 않다 올해 정기국회 마지막 국토법안심사소위에선 안건에서 조차 빠졌습니다. 

연초 정부가 실거주 의무 폐지를 공언해 왔지만 논의 자체가 불발된 셈입니다. 

연내 추가로 임시국회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열려 있긴 하지만 이번 법안소위에서도 통과되지 못한다면 사실상 무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내년 4월 총선 정국으로 진입하면 장기 계류 중인 민생현안들 처리가 시들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전국 4만3800여 가구, 실거주 의무 규제 받는다 

실거주 의무 폐지 내용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은 2021년 2월 19일 이후 분양한 수도권 분양가상한제 단지 수분양자에 적용되는 실거주 의무 기간(최초 입주일로부터 2~5년간)을 없애는 게 골자입니다.

만약 그 전에 집을 팔거나 전세를 내놓고 잔금을 치르는 등의 현행법상 실거주 의무를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처분을 받게 되는데요. 

여당은 잔금 부족 등 개인 사정으로 실입주가 어려운 실수요를 보호하는 입법인 만큼 신속한 처리를 요구하고 있지만, 야당에선 실거주 의무가 사라지면 갭투자처럼 투기가 성행할 수 있다는 이유로 개정안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여야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실거주 의무 폐지 법안 처리가 불발되면, 분양가 산정 당시 분양가상한제 적용 단지들은 실거주 의무에 걸리게 됩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실거주 의무를 적용 받는 아파트는 전국 총 66개 단지, 4만3786가구에 달하고 있습니다.

당장 내년 입주 예정인 e편한세상 고덕 어반브릿지, 더샵 하남에디피스, 강동 헤리티지 자이 등이 실거주 의무 규제를 받고, 2025년 입주 예정인 올림픽파크 포레온, 장위자이 레디언트 등은 곧 전매제한 해제일이 도래하지만 실거주 의무 기간 2년은 그대로 채워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실거주 의무 폐지 기대했는데… 둔촌주공 입주자 근심 눈덩이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해당 단지에 청약했던 당첨자들은 큰 혼란에 빠진 모습입니다. 정부 발표대로 전매제한 및 실거주 의무 폐지를 예상하고 청약에 나섰지만 전매제한만 풀리다 보니 현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 됐습니다. 

실거주 의무 때문에 집을 팔거나 전세를 놓을 수 없는 지경이 됐기 때문입니다. 전세를 끼고 잔금을 치르려고 했던 당첨자들이 가장 난감해졌습니다. 

국내 최대 재건축 아파트인 올림픽파크 포레온(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은 당장 오는 15일부터 분양권 전매가 허용되지만 실거주 의무로 분양권을 팔더라도 해당 주택에 살아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법 개정만 믿고 청약 당첨자의 분양권을 산 사람이나 분양권 전매를 앞뒀던 수분양자들은 앞으로 상황이 막막하기만 한데요. 

이처럼 전매제한이 풀려도 실거주 의무가 폐지되지 않으면 분양권 거래가 사실상 막힌다는 의미여서 거래절벽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분양권 거래시장은 얼어붙었습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1월 분양권 전매건수는 한자릿수에 불과했지만 법안 통과 기대감이 고조되면서 4월과 5월에 40건으로 크게 늘었는데요. 그러다 7월(30건) 이후 거래건수가 점차 줄면서 8월 20건, 9월 12건, 10월에는 4건에 그쳤습니다. 

해당 법안의 계류가 장기화되면서 실거주 의무 폐지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폐지가 안되면 부동산시장 연착륙에 큰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부동산 전문가 K씨는 “정부 약속과 달리 현실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실거주 의무 규제를 받는 단지의 입주자들은 잔금 마련 등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실거주 의무는 거래를 막히게 하고, 주택시장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만큼 폐지되는 방향이 맞다. 그렇지 않으면 실수요 피해와 더불어 시장 연착륙에 혼란을 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