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데자뷰일까…애물단지 팔려고 현금 주는 건설사 백태
최근 청약 열기가 한풀 꺾인 모습입니다. 고분양가와 고금리 여파로 인한 부동산 경기 불황이 예견되면서 건설업계도 신규 분양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분양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불황의 징후로 여겨지는 건설사의 파격 마케팅을 살펴보겠습니다.
벼랑 끝 마지막 지푸라기… 현금 지급, 할인 분양 등 마케팅 총동원
높은 분양가와 고금리 부담으로 청약통장 가입자수는 줄고, 당첨 가점은 낮아지는 등 청약 열기가 시들해진 분위기입니다. 선당후곰(선 당첨, 후 고민)으로 대표되던 과거 호황기 때와는 대비되는 모습인데요.
청약 불패라 불리는 서울에서 조차 1순위 청약 마감에 실패하거나 계약 포기에 따른 미계약 물량이 나올 정도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약 열기가 지금보다 더 가라앉을 것이란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건설 불경기의 징후들은 건설사들의 분양 마케팅에서 이미 예견됐던 일입니다. 미분양만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건설사·시행사마다 마지막 수단으로 분양 가격을 낮추거나 파격적인 계약 조건을 내걸고 있습니다.
중도금 전액 무이자 혜택은 물론 중도금 후불제, 분할 분양에 이어 현금지급을 통한 사실상 할인 분양까지 속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판매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건설사가 적지 않습니다.
가장 부담이 큰 중도금 대출이자를 대신 내주거나 중도금 이자 후불제 혜택을 제공하는 곳들이 급증했습니다. 분양 호황기에는 굳이 무이자 혜택을 제공하지 않아도 쉽게 완판됐었지만, 이제는 수요자들의 부담을 줄이고 진입장벽을 낮출 각종 혜택들이 필요해진 셈입니다.
최근에는 아예 계약금부터 전액 무이자로 대출 해주겠다는 시행·시공사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보통 중도금 대출이 일반적인 상황이기에 계약금까지 무이자로 대출해주는 혜택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례로 분양가가 최대 30억원에 달했던 서울 서초구 일원 하이엔드 주거상품의 경우 준공(2025년 예정)까지 부담을 없애고자 계약금 무이자 대출에 중도금 역시 무이자 지원이라는 빅 카드를 꺼냈습니다.
여러 차례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던 인천 연수구의 한 아파트는 계약 시 최대 1억원의 현금을 지급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것은 물론 계약금도 타입별 1~2천만원 정액제를 내거는 등 모든 혜택을 총동원했습니다.
현금 지급, 할인 분양도 흔한 일이 됐습니다. 서울 구로구 C아파트는 계약 때 현금 3천만원을 지원한다는 혜택을 제시, 심지어 계약을 해지해도 회수하지 않는다는 조건까지 붙여 사실상 할인 분양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해당 단지는 중도금 무이자에 계약금 절반에 대한 무이자 대출, 발코니 무상 등도 플러스 알파로 내걸었습니다. 서울 강북구 K아파트는 최초 15% 할인 분양에서 최대 35% 할인 분양으로 추가 할인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지방에서는 대구 서구의 D아파트가 분양가의 10% 할인은 물론 선착순 계약자에게 축하금으로 400만원을 현금 지급한다는 조건을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광주 첨단지구의 한 아파트의 경우 입주 시점 이전에 출산 시 출산장려금을 제공하는 등 시행주체가 직접 현금을 지급하는 모습들을 이제 분양시장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미분양 공포 속 위기의 부동산…. 2008년 금융위기 재연되나 우려 커져
건설사들의 이러한 판매 마케팅은 비단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전후로 대규모 미분양 사태를 빚었을 때의 악몽을 떠올려 볼 수 있는데요.
당시 미분양 물량을 빨리 털어내고자 사업장마다 너도나도 계약금을 낮추고 분양가 할인에 나선 것은 물론 상품권, 텔레비전, 자동차 등 각종 경품을 주는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심지어 일부 건설사들은 TV홈쇼핑까지 진출해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아파트를 팔았지만 끝내 시장 침체 속에서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지 못하고 건설사 줄도산이라는 사태를 맞았는데요.
최근 건설사들의 행보도 금융위기 때와 묘하게 오버랩되는 모습입니다. 미분양만큼은 피하고자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규모 미분양 사태가 다시 올 수 있다는 위기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해와 달리 대대적인 할인 분양 분위기라는 점을 미뤄볼 때 본격적인 미분양 사태의 전 단계로 보는 관측도 나옵니다.
실제로 국토교통부의 미분양 물량 통계를 살펴보면, 전국 미분양 주택은 올해 9월말 기준 5만9806가구로, 국토교통부가 위험 수위로 잡은 6만2000가구에 임박한 모습입니다. 물론 현재 미분양 물량이 금융위기가 불어 닥친 2008년(16만5599가구)과 비교해 훨씬 적은 수준이긴 하나 안전하다고 보는 것은 위험한 예단입니다.
이러한 미분양 공포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할인 분양까지 등장한 건 사실상 본격적인 불황기로 봐야 한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이야기입니다. 밀어내기 분양과 준공 후 미분양 증가에 이어 할인 분양까지 늘어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인데요.
부동산전문가 H씨는 “미분양에 휘청하지 않으려 건설사마다 어떻게든 미분양 물량을 빨리 털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물량을 털어내는 게 낫다는 판단인데요. 이런 상황 속에 할인 분양까지 나왔다는 건 사실 본격적인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분양이 나와도 가격을 낮추고 낮춰야 팔 수 있는 시장이 됐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미분양 공포가 커지면서 금융위기 재연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