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무풍지대… “LTV 100% 이주비 대출”의 비밀

2023-09-18     김영환 기자

한남3구역 이주비 대출 2.7조 원 조달완료

 

한남3구역 사업이 순풍에 돛을 달았습니다. 7월 기준 4% 초반(코픽스+0.4%p) 조건에 2.7조 원 규모 이주비 대출 조달도 마쳤죠. 덕분에 10월부터 진행할 이주도 순조로울 전망입니다.

이처럼 신속한 이주는 빠른 준공을 의미하기도 하므로, 관리처분계획인가가 떨어지고 나면 모든 조합원의 촉각은 이주비 대출의 조건과 규모에 쏠리게 되죠. 오늘 리얼캐스트는 정비사업의 이주비 대출에 대해 알아봅니다.

 

이주비는 ‘보상금’ 아냐… 집단 주담대에 가까워

‘이주비’는 정비사업 조합원들이 임시로 이주하기 위해 마련하는 돈을 말합니다. 새집이 지어질 때까지 전세를 얻어야 할 조합원들에게 꼭 필요한 목돈이죠. 이렇게만 정리해버리면 간단해 보이지만 쉽게 마련되는 돈은 아닙니다. 일단 규모부터 어마어마하죠. 산술적으로는 아파트 단지(또는 마을) 하나를 빌릴 규모의 돈이 필요한 셈이니까요.

분양대금을 받기 전까지는 그저 빚쟁이인 조합이 마련하는 건 불가능한 규모의 자금이기 때문에, 조합은 시중 금융기관에서 집단으로 이주비를 조달하게 됩니다. 이를 ‘이주비 대출’이라고 합니다.

시장에서는 이사비나 이주정착금, 주거이전비 등의 개념과 혼동되어 “이주비는 정비사업 보상금”이라는 오해가 퍼져 있기도 한데요. 이주비는 완전히 성격이 다른 돈입니다. ①조합원들만 ②소유 토지를 담보로 ③이주를 조건으로 해서 ④빌릴 수 있는 대출금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흔한 오해와 달리 세입자는 어쨌든 이주해야 하지만 ‘이주비’에는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세입자는 집주인이 이주비 대출을 받아서 임대차 보증금을 반환하면 떠날 뿐이죠. 재개발 구역의 원활한 퇴거를 위해 소유주를 통해 세입자에게 조합이 지원하는 돈은 이주비가 아니라 ‘이사비’입니다.

 

수주전 단골 카드, “LTV 100% 이주비(대출) 지원”

이주비는 그 막대한 규모와 절실한 필요로 인해 정비사업 수주전의 단골 카드로 활용되었습니다.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이주비 대출이 어려워지자, 건설사들은 여러 편법까지 동원하며 조합에 어필했죠.

LTV 100% 대출 지원 조건이 대표적입니다. 금융권에서 확보할 수 있는 40% 이외에 나머지를 직접 빌려주는 방식인데요. 신용보증을 통해 조합에 사업비 명목으로 대여한다는 아이디어가 기반이 됩니다.

집값이 15억원이 넘어서 이주비 대출을 받을 수 없었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SPC를 설립해서 이주비 100%를 지원하는 아이디어도 등장했습니다.

한남3구역 수주전에서도 이주비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당시 LTV 40%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LTV 70%에 가구당 최저 5억 원의 이주비를 보장하겠다는 제안이 나와 여론의 관심과 수사당국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 사건은 시공사들이 전부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을 받으면서 종결되었는데,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위반인 건 분명했지만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부는 곧장 도정법을 개정하고 건설사의 이주비 제안을 대폭 제한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 방침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폭 수정됩니다. 경기가 나빠지고 원자재 가격도 오르니 수주전은커녕 수의계약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거든요.

애초에 추가 이주비 대출 제안은 조합원들의 필요에 의해 인기를 얻게 된 항목이기도 했습니다. 조합원들의 이주비 대출에 대한 열망이 어느 정도냐면, 서로 허위 전세계약을 맺고 보증금 반환을 명목으로 조합에서 돈을 끌어낼 정도입니다. 유명한 “전세 맞교환” 수법입니다.

결국 정부는 시행령을 정리해서 기존에 아예 틀어막았던 재건축도 이주비 대여를 제안할 수 있게 했고, 시중은행의 주담대 금리 수준을 지키라는 제한만 걸었습니다. 여기에 올해에 이르기까지 대출 규제들이 하나둘 완화되면서 이주비 대출에 걸려 있던 제한도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신규대출 받을 땐 DSR 규제도 예외

이주비는 주택담보대출의 일환이지만 DSR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금융위는 2019년 DSR 규제를 도입하면서도 이주비 대출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전세자금 대출이나 중도금 대출처럼 실수요라는 이유입니다.

고가주택 제한도 풀렸습니다. 지난해 말 15억 원 이상 고가주택의 주택담보대출이 LTV 50% 한도에서 허용되었죠. 권리가액이 20억인 경우에도 은행에서 이주비 대출을 10억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단, 어디까지나 실수요를 전제로 DSR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규대출에는 DSR을 적용하지 않지만, 대출받고 나면 해당 대출금이 DSR 계산에 포함된다는 점, 신규주택을 매수하면 대출금이 즉시 회수된다는 점도 명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증가하는 가계대출… 한은 보고서, “이주비 대출도 DSR 규제 적용해야”

이주비 대출의 규제 완화가 거시적으로 보면 마냥 반길만한 일은 아니긴 합니다. 최근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에서 이주비, 중도금 등 DSR 규제 예외 대상은 물론 전세대출 보증 한도도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한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위험수위에 도달한 가계부채, 다시 고개를 치켜드는 집값 등의 문제를 잡으려면 불필요한 유동성 공급을 틀어막아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이주비 대출이 늘어나면 정비사업이야 원활해질지 모르지만 가계부채도 확실히 부풀겠죠. 이주비 대출이 촉진하는 정비사업의 공급 효과와 유동성 제한을 통한 주택투자 가수요의 축소, 어느 쪽이 집값 안정에 더 도움이 될까요? 어려운 문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