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 커지는 '순살아파트' 제대로 확인하는 방법은?
‘순살아파트’로 드러난 건설 현장의 민낯
무량판 아파트의 신뢰성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검단에서 발생한 신축 아파트 주차장 붕괴 사고로 시작된 불안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민심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전수조사가 오징어 채낚기처럼 수면 위로 새로운 문제들을 끌어올리니 이슈가 식을 새가 없죠.
덕분에 시장에선 아예 무량판 아파트 리스트가 돌고, 신뢰하기 힘든 구별법까지 전파되면서 혼란을 더하고 있습니다. 리얼캐스트가 이슈 전반을 정리해봤습니다.
지하 주차장과 함께 무너진 ‘공공분양’ 신뢰
지난 7월 국토부가 발표한 ‘인천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 조사 결과는 설계부터 감리, 시공에 이르는 총체적인 부실을 지적했습니다.
필수적인 철근(전단보강근)은 설계할 때와 시공할 때 걸쳐 두 차례에 실종됐고, 콘크리트마저 푸석했는데 그 위에 조경토까지 한계 이상으로 적재하니 슬래브가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린 겁니다. 검단신도시에 LH가 시행하는 공공분양 아파트로 굉장한 관심을 받았던 단지에서, 그것도 어린이 놀이터 예정지가 폭삭 주저앉았으니, 민심이 삽시간에 흉흉해졌죠.
LH는 눈이 뒤집힌 국토부 앞에 납작 엎드려서 91개 단지 전수조사에 들어갔고, 국토부는 국토부대로 민심을 달래겠다고 무량판 구조로 지어진 민간아파트 293개 단지도 전수조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이 와중에 LH는 조사 대상은 10개, 철근 누락단지 발표도 5개 빼먹어서 정부 조사 결과의 신뢰성을 박살 내는 한편, 진화를 위해 뼈를 깎는 각오로 사직서를 낸 임원들이 사실은 곧 집에 갈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탄식을 자아냈습니다. 심지어 이 난리 통에 또 ‘전관 기업’에다 일감을 주다가 걸려서 위신이 진창을 구르고 있죠.
국토부도 LH를 매섭게 훈도하면서 거리 두기에 나섰습니다만 썩 좋은 소리를 듣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호기롭게 무량판 구조 민간아파트 전수조사를 선언하고 8월 초부터 착수하긴 했습니다만 샘플 조사의 신뢰성, 주민들의 저항 등 문제가 한가득입니다.
애초에 집값에 치명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문제가 발견될 단지는 물론이고 조사 대상인 무량판 293개 단지도 공개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전수조사를 마치더라도 기대처럼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무량판 부실시공’의 위험
국토부가 조사에 열을 올리고 있는 ‘무량판 구조’는 건축물의 하중을 분산하는 구조의 일종입니다. 크게 벽식과 기둥식(라멘)으로 나뉘는데요. 건물의 하중을 내력벽으로 견디면 벽식, 기둥과 보로 견디면 기둥식입니다.
무량판은 기둥을 세운다는 점에서 라멘구조와 비슷한데요. 보를 얹은 다음에 슬래브를 얹는 라멘구조와 달리 슬래브를 바로 기둥에 얹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대들보가 없다(無梁)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플랫슬래브(plat slab)라고도 합니다.
지금은 사상누각 취급을 받고 있지만 제대로만 시공하면 장점이 아주 많은 구조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 유명한 압구정현대, 타워팰리스도 무량판 구조로 지어졌고 아이파크삼성도 무량판 아파트로 유명하죠.
내력벽이 없어서 실내를 넓게 쓸 수 있고, 기둥만 잘 배치하면 리모델링하기도 좋습니다. 보가 없어서 층고도 높고, 천장도 깔끔한 데다 보를 만드는 비용, 거푸집을 철거하는 비용도 크게 절약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제대로 시공’이 안된 경우입니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무량판 구조는 ‘플랫 플레이트 슬래브’라는 구조로, 슬래브가 보의 역할을 해야 하므로 기둥 위로 전단보강근을 잔뜩 넣어줘야 합니다. 보가 없어진 게 아니라 슬래브 안에 들어간 셈이죠.
그런데 이 전단보강근을 설계, 시공단계에서 빼먹으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뚫림전단(punching shear)에 아주 취약해지는데요. 기둥이 받치는 부분 외곽이 전단(剪斷)되어 바닥이 통째로 내려앉아 버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고층 건물의 경우 연쇄적으로 아래층 바닥이 내려앉아 버리는 팬케이크 붕괴 현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 경우 대참사가 발생합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대표적입니다.
이런 사고는 사고 자체도 끔찍하지만,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는 문제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 특히 끔찍한 일입니다. 플랫 플레이트 슬래브의 경우 콘크리트 안에 철근이 제대로 들어갔는지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못 믿을 ‘순살아파트 확인법’
덕분에 시장에서는 무량판 구조 자체에 대한 공포가 번지고 있고, 안다 한들 딱히 방법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는 집이 무량판 구조인지 아닌지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확인법’을 찾아다니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시점에는 ‘건축물대장에 철골철근콘크리트라면 무량판 또는 기둥식’이라거나, ‘평면도에서 회색으로 표현된 부분이 있으면 무량판식’ 이라는 정보가 돌고 있는데요. 사실 정확한 방법들은 아닙니다.
일단 건축물대장의 구조에 적히는 ‘철근콘크리트’ 등은 재료에 따른 분류고, 무량판은 형식에 따른 분류입니다. 건축물대장만 보고는 정확한 구별이 불가능합니다.
가령 ‘철골철근콘크리트’의 경우 기둥의 존재를 암시하는 강력한 증거이긴 하지만, 기둥은 ‘철근콘크리트’로도 만듭니다. 애초에 철골철근콘크리트는 적용례도 적죠. 게다가 ‘철근콘크리트’도 ‘철근콘크리트벽식’이라고 적기도 하고 ‘철근콘크리트라멘조’라고 적기도 합니다만, 특별히 구별 없이 철근콘크리트라고 적기도 합니다.
이렇게 ‘철근콘크리트’로 적혀 있어 구별이 어려울 때는 인터넷 포털의 평면도를 보는 방법도 제시가 되는데요. 평면도의 ‘회색부분’이 기둥이라고 설명합니다만 100% 확실한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아이파크삼성이나 타워팰리스의 경우 평면도로 기둥을 확실히 판별하기 어렵죠.
천장을 마감하지 않는 주차장에서 육안으로 확인하는 방법도 있다고 하는데요. 주차장과 주거동에 다른 구조를 적용하는 예도 흔하며, 건축물대장에도 대표적인 구조 하나만 작성하기 때문에 정확한 확인은 어렵습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천장을 뜯어내고 구조를 확인하는 겁니다. 비파괴적인 방법으로는 시공사나 관리사무소를 통해 설계 도면을 받아 확인하거나, 지자체 건축과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구조계산서 등을 받아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다만 이 방법은 전문지식이 필요하며, 복잡하고 번거롭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번에도 땜질로 끝나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어
전문가들은 무량판 구조가 아니라 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전문성을 갖춘 구조기술사는 실권이 없고, 발주처는 공기단축에 혈안이 되어 있는데 감리는 발주처에서 돈을 받으니 부실 공사 문제가 끊이질 않는다는 겁니다.
국토부는 이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방안을 검토 중인데요. 금융감독원처럼 정부가 직접 감리를 감독하는 감리감독원을 설치하는 방안, 무량판 구조를 특수구조 건축물로 지정해서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전자의 경우엔 옥상옥이라는 지적이 있고, 후자는 그냥 업계에서 무량판 구조를 퇴출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구조설계는 건축사에, 감리는 발주처에 종속된 구조 자체를 해결하는 방안은 아직 없어 보입니다. 무량판 아파트로 시작된 논란이 건설업계 전반의 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정부의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