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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5년, 억눌렸던 분노 폭발한 일산

기자명 한민숙
  • 일반
  • 입력 2019.05.15 10:00
  • 수정 2019.05.24 10:14


일산의 분노…靑 청원 1만 5000여 명

"광주, 부산, 심지어 인천보다 집값 싼 곳이 바로 일산입니다. 작년에 전국 집값이 '미친 상승'을 할 때 이곳만은 제자리걸음이었어요. 강남, 목동, 분당과 함께 4대 천왕으로 불리던 이곳이 지금은 분당 반값이라뇨. 이것도 억울한데 3기신도시까지 들어서면 일산 집값은 사망선고를 받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더 이상은 안 참습니다.”(후곡마을 거주민 A씨)

[리얼캐스트=한민숙 기자] 서울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3기신도시 추가 지정에 인근 주민들의 집단 반발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3기신도시로 추가 지정된 ‘고양 창릉’에서 불과 10㎞ 내외에 자리한 일산, 파주 운정입니다. 

고양 창릉지구는 덕양구 동산동, 용두동, 화전동 일원 813만㎡(약 246만 평) 면적에 약 3만 8000호 주택공급이 예정돼 있습니다. 발표된 5곳의 3기신도시 중 남양주 왕숙지구(6만6천 가구) 다음으로 규모가 커 서울 수색, 상암지구와 근거리인 입지에 더해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곳입니다. 

고양시에만 30만여 가구, 경기권 최고

일산 주민들이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공급정책 때문입니다. 최근 집들이에 들어간 킨텍스 일대나 운정 등도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 창릉지구까지 가세하면 일산 및 파주 일대의 ‘슬럼화 현상’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입니다. 

실제 고양시에는 일산 킨텍스 지구에 약 9,000가구가 입주(예정)하고 있으며, 장항동 일대에 12,500가구(행복주택 포함), 영상밸리에 약 4,000가구, 탄현지구 3,000가구 등 모두 2만8,500가구가 확정되어 진행 중입니다.

여기에 3만8,000가구의 고양 창릉지구까지 가세하면 일산, 화정, 행신, 능곡, 삼송, 원흥, 향동, 지축 등 크고 작은 택지지구가 곳곳에 들어선 고양시에는 약 30만여 가구가 자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경기도에서 가장 많은 가구수로 분당, 일산 등 5곳의 1기신도시 전체 가구수(27만여 가구)보다 많은 것입니다.

청사진만 무성한 자족도시로의 개발 

 

고양시의 또 다른 문제는 일자리 없는 베드타운이라는 점입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고양시 장항동 일대를 테크노밸리와 영상밸리로 조성, 4차 산업의 전초기지로 육성하여 9만여 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하지만, 수년째 청사진만 무성할 뿐 구체적인 사업 성과 없이 개발이 답보 상태로 남아 있죠. 

“일산에는 이렇다 할 기업체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나마 계획된 업무지구도 기업체가 아닌 호텔, 오피스텔 등 숙박시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유입 인구를 고려하지 않은 채 주택공급에만 열을 올리고 있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일산신도시연합회 회장)

“신흥 업무지구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금융이면 금융, IT면 IT 등 통일성 있는 집단군 형성을 전제로 체계적인 개발이 이뤄져야 합니다. 금융타운 여의도나 방송·미디어타운 상암, IT를 선도하는 판교처럼 말이죠. 완연한 성숙도시로 인력 수급이 용이한 일산조차도 기업유치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베드타운으로 전락하는 상황에 단순히 업무지구를 많이 조성하겠다는 뜬구름 발표만으로는 창릉지구 역시 기업유치가 쉽지 않을 것이란 말입니다.”(부동산 전문가 A씨)

착공 없는 GTX 착공식


일산 거주민들이 반발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교통입니다. 고양 창릉지구 조성으로 향동지구역(가칭), 지구 내 3개역, 화정지구역, 대곡역, 고양시청역 등 총 7개 전철역을 신설할 예정이라지만, 기존 일산 및 파주운정에서 서울을 오가는 출퇴근 러시아워로 이미 자유로를 비롯해 대중 교통망은 포화 상태입니다. 여기에 서울로 들어가는 경계와 도심으로 진입하는 길목에 자리한 3기신도시까지 가세하면 출퇴근 전쟁은 더욱 악화될 것이란 의견입니다. 

“광역교통개선대책으로 GTX 착공식을 했지만 실제 첫 삽도 뜨지 않았습니다. 보여주기식으로 착공식만 해놓고 공사도 돌입하지 않고 있어 예정된 2023년 말 GTX 완공이 제대로 지켜질지도 의문입니다.”(대화동 건영 부동산)

“같은 1기 신도시로 시작했지만 분당은 분당선에 신분당선 개통이라는 교통 호재가 더해지면서 강남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고양시는 환승·배차시간이 긴 '경의중앙선'과 다른 지하철 노선에 비해 경쟁력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3호선 연장 '일산선'에 기대고 있는 실정입니다. 결국 버스와 자가운전 이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통일로와 자유로의 '교통지옥'을 양산했죠. 지정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교통이나 인프라스트럭처 측면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입니다.”(부동산 전문가 H씨)

잠 못 드는 일산, 도화선된 3기신도시


일산 주민들이 이례적으로 강한 집단행동을 하는 것에는 이 같은 배경이 있는 것입니다. 

3기신도시 발표 일주일 가량이 경과한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3기신도시 지정 취소를 주장하는 청원이 다수가 올라와 있습니다. 지역민을 중심으로 온라인 카페나 SNS가 결성되고 있고 오프라인으로도 반발의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지난 12일, 파주 운정신도시에서는 3기신도시 철회를 요구하는 일산, 파주, 검단신도시 연합 집회가 있죠. 이를 시작으로 이번 주 18일에는 일산에서 2차 반대 집회가 개최될 것으로 보입니다. 

일산서구에 거주 중인 최 모씨는 "수십 년간 이 지역을 지켜오며 자부심을 갖고 살았는데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후곡마을 주민 김 모씨는 "청원이든 집회 참가든 뭐든 하겠다. 필요하면 후원금도 내고 아파트 단지 내 홍보도 할 생각이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들의 반발에 집단 이기주의가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집값 하락을 우려한 집단 이기주의로 치부해 버리기에 앞서 그들의 행동 원인을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십수년 일산 개발은 지나치게 정체돼 있었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도면 유출, 투기 의혹에 더해 주민 의견 수렴을 무시한 3기신도시 개발이 억눌렸던 일산 거주민의 분노에 불을 지피는 도화선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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