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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 천국에서 보행자 천국으로… 40년 만에 모습 드러낸 영등포 영중로

기자명 김영환
  • 일반
  • 입력 2019.04.17 09:05
  • 수정 2019.04.30 11:17

40년 만에 제 모습을 찾은 영중로

 

[리얼캐스트=김영환 기자] 40년째 불법 노점상으로 가려져 있던 영등포역 앞 영중로가 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영등포구는 3월 25일 오전, 영중로에 설치된 일대의 노점상 45곳을 일제히 철거했습니다. 영중로 보행환경개선 사업에 의해 진행된 이번 철거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2시간 만에 마무리 되었습니다.

서울시의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어 거리가게 허가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고, 영등포구에서 힘있게 영중로 보행환경개선사업을 추진한 결과 일구어 낸 쾌거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성과로 손꼽히는 건 사전 자진정비 안내, 행정대집행 예고와 함께 사전 대화와 설득을 통해 충돌 없이 철거를 마쳤다는 것입니다.

영등포구는 올해 4월까지 전기∙수도공사를 거쳐 버스정류소를 이전하는 등 정비를 마치고, 7월부터는 영중로 양쪽 도로에 15곳씩, 거리가게 30곳을 허가제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거리가게 허가제란? 

이번에 도입되는 거리가게 허가제는 일정 조건을 갖춘 노점(거리가게)에 정식으로 허가를 내 주는 정책입니다. 2013년부터 거리가게 상생정책 자문단을 구성해 관련단체 등과 협의를 거쳐 왔고, 2018년 7월에 이르러 ‘거리가게 허가제 가이드라인’이 발표되며 구체화 되었습니다.

거리가게 허가제가 도입되면, 노점상은 단속에 대한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장사를 할 수 있고, 서울시는 도시 미관을 정비하면서 세수를 확보할 수 있으며, 시민은 안전한 거리에서 향유하는 보행권을 되찾게 될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서울시가 발표한 ‘거리가게 허가제 가이드라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요. 도로점용허가제를 도입하며, 가로시설물 설치기준을 제공합니다. 이 가이드라인은 허가증의 전매∙전대를 금지하는 한편, 운영자 교육과 점용료 산정 및 부과∙징수를 통해 거리가게 영업을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거리가게를 합법적으로 운영하려면 도로점용허가신청을 해서 관할구청으로부터 도로점용허가증을 받아야 합니다. 이 허가증의 유효기간은 1년이며, 운영은 허가를 받은 본인만이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 권리를 전매∙전대할 수도 없습니다.

구체적인 생계형 거리가게 대상자 선정은 관할구청에서 하는 만큼 그 기준은 지역마다 다를 것으로 보입니다. 영등포구에서는 자체적으로 기준안을 마련했는데, 생계형 거리가게 허가제 대상자는 기업형 노점상을 배제하기 위해, 자산가액 본인 3억 5천만원, 부부 합산 4억원 미만으로 부동산가액과 금융재산에서 부채를 빼 계산한다고 밝혔습니다.

식품위생법 등으로 법률상 유통∙판매가 금지된 물품을 판매할 수 없고, 연간 1회지만 거리가게 준수사항 등에 대한 교육도 받아야 합니다. 본인이 질병 등의 이유로 부득이하게 운영을 할 수 없을 경우엔, 배우자가 보조운영자로서 운영할 수는 있습니다. 대신 사전승인이 필요하며, 배우자 이외의 가족이 보조운영자가 될 수도 없습니다.

시설물 설치기준도 꽤 빡빡한 편인데요. 유효도로폭 2.5m 이상의 보도에만 설치가 가능하고, 버스∙택시 대기공간이나 지하철 등의 시설로부터 2~2.5m 이상 간격이 있어야만 합니다. 한 거리가게가 차지하는 면적은 3m x 2.5m를 넘어서는 안되고, 이를 어긴다면 과태료를 내게 됩니다.

점용료도 당연히 내야 합니다 

엄연히 서울시가 소유한 도로를 점유하여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점용료도 내야 합니다. 「서울특별시 도로점용허가 및 점용료 등 징수 조례」에 따르면 가로판매대, 구두수선대, 노점은 토지가격에 0.7%를 곱한 금액을 연간 점용료로 징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도로는 공시가격이 매겨지지 않으므로 인근 잡종지를 기준으로 하는데, 잡종지는 대개 대지와 가격이 거의 비슷하거나 낮죠. 영중로의 인근 도로변 대지의 2019년 개별 공시지가는 1㎡당 2천만원 내외에 책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영중로에서 허가를 받아 영업하는 거리가게 운영자가 내야 할 연간 점용료는 2천만원 x 7.5(㎡) x 0.7% = 105만원이 됩니다. 연간 점용료를 12개월로 나누면 월 8만7500원이네요. 

긍정적인 분위기, 그런데 어째 익숙한데?

이번 정책은 노점상들 사이에서도 긍정적인 의견이 많습니다. 단속의 공포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장사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민들 역시 깔끔한 도로를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비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용이 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그 골자는 어째 익숙합니다. 난립한 노점상을 정리하고 깔끔하게 정리하여 합법적으로 장사하게 한다는 사업은 이미 있었습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가끔 보이곤 하는 가로판매대와 구두수선소, 즉 보도상영업시설물입니다.

서울시의 사전공표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서울의 보도상영업시설물은 1,955곳입니다. 2012년 2,428곳이었으나 6년 사이 점진적으로 축소되어 왔습니다.

이 때문에 여전히 노점상 일부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전매제한과 세습금지는 보도상영업시설물 관리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내용이며, 행정상의 편의에 따라 규제가 추가되며 노점상의 점진적인 축소를 유도하게 될 거라는 주장입니다.

보도상 영업시설물 시즌2?

이번에 추진되는 거리가게 허가제는 보도상 영업시설물의 경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제가 완화되었습니다. 설치할 수 있는 보도의 유효보도폭도 여유가 늘었고 (4m→2.5m) 최대점용면적도 2배 가까이 넓어졌습니다. 운영자의 사진을 붙인 운영자증명서를 시설물에 부착하는 내용의 시설물 관리에 관한 규정도 없습니다.

50m 이격거리를 요구하는 보도상 영업시설물과 달리 한 거리에 노점상들이 모여서 영업할 수 있다는 차이도 있습니다. 보도상 영업시설물처럼 유동인구가 적은 곳으로 밀려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이후 가이드라인이 변경된다면 보도상 영업시설물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변경이 행정편의적으로만 이루어지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보도상 영업시설물의 적정분포, 운영관리 등에 관한 심의하는 ‘보도상영업시설물 운영위원회’는 10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보도상영업시설물 운영자는 가로판매대 대표, 구두수선소 대표 한 사람씩만 참여가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거리가게 허가제 가이드라인에 따른 서울시 거리가게 상생정책위원회에는 전체 15명 중 3분의 1 이상을 거리가게 단체 추천위원으로 채우도록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거리가게 단체의 영향력이 커지고, 과거에 비해 협상력이 늘어나게 되므로 일방적인 시의 처분에도 어느 정도 제동을 걸 수 있겠죠.

거리가게 허가제, 상생의 시작이 될 수 있을까요?

이번 거리가게 허가제는 서울시가 오랜 기간 준비했고, 끈질긴 노력을 기초로 사전 협의를 선행하는 만큼 아직까지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로 보입니다.

거리가게 허가제 시범사업지역은 영등포구 영등포구 영중로(390m, 45개소)를 비롯해 중랑구 태릉시장(320m, 106개소), 동대문구 제기동~경동시장 로터리(255m, 75개소)입니다. 서울시는 금년 중 노점상 6600여 곳 중 허가 가능한 1800여 곳을 우선으로 허가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시와 노점상, 그리고 시민들의 양보를 담은 약속, 거리가게 허가제가 깨끗하고 안전한 거리, 그리고 생계형 노점상의 호구지책까지 지켜낼 수 있는 상생의 시작이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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